하야미 히로는 어느날 홀연히 사라졌다.
남성 프리즘 쇼의 정점에 서 있던 오버 더 레인보우에 소속된 아마 가장 잘 나가는 스타라 해도 무색하지 않을 그의 실종은 근 일주일간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다. 잠시 다녀오겠다는 말만을 남긴 채,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이 상황에 사라졌다 라는 단어는 몹시 적절했다.
"그녀석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카즈키가 결국 일어나며 화를 내었다. 예전부터 정작 중요한 것은 제 속으로 끙끙 앓으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성격임을 알고 있어 그저 마음의 정리가 필요해서 그렇다고 납득하려 하였지만, 이제 더이상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은 지났다. 적어도 그 하야미 히로라면, 은퇴를 하여도 제게 아니 코우지에게는 말을 하고서 이후 자신의 팬들에게 말한 이후 무대에서 내려갈지언정 이렇게 홀연히 사라져 모두를 걱정하게 할 작자는 아니었다. 전에 한동안 베루가 아무리 연락을 해보아도 닿지않던 그 때에도, 하야미 히로는 무대에는 아무런 탈 없다는 듯 웃음지으며 올라섰다. 하지만 이번은 그조차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히로답지 않다. 라고 코우지는 생각했다.
납치일까, 아니면 해외로의 도피일까. 아무도 듣지 않는 티비는 그저 홀로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번쩍거릴 뿐이었다. 그라면 이제껏 악질적인 팬들도 많이 있었을 터이니 아주 가능성이 없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겨진 메세지는 히로 그 자신의 손으로 가지런히 쓴 글씨였다. 중간에 당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코우지는 무언가,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거라는 직감이 계속 제게 찾아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한동안 뜨겁게 다뤄지던 그의 실종도, 이젠 시들해진 것인지 이제 아무리 티비를 켜고 있어도 히로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코우지는 한참동안 채널을 돌리다가, 결국 소파에서 일어났다. 제 방으로 들어가, 그리 많지 않은 짐을 챙겼다. 이제 오버 더 레인보우의 활동도 잠정 중단 되었으니, 더이상 제가 필요한 일은 없었다. 그에게 오버 더 레인보우 활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사라졌으니, 만약 중단되지 않았다 해도 그는 지금 동일한 행동일 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나 둘. 곱게 개어진 옷이 큰 트렁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는 몸에서 잘 떼어놓지 않았던, 아버지의 기타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는 이번 여행에서는, 기타를 치지도, 노래를 부르지도, 작곡을 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니 코우지는 더이상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제 노래를 좋아해준 것도, 그 노래를 처음 불러준 것도 또 저를 다시 무대 위로 끌어올려준, 그 모든 일을 한 히로가 사라짐에 따라 도저히 그것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해보려 해도 결국 결과물은 처참할 뿐이었다. 이런 곡으로는 프리즘 쇼는 물론, 그저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우울감을 태운 기차는 빠르게 달려갔다. 코우지의 눈은 밖을 비추는 창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 광경은 그저 이어진 색체의 흐름일 뿐 그 어느 곳도 그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코우지는 그 너머 저 먼 아득한 곳을 응시하려 했다. 과연 히로는 어디로 간 것일까. 왜 모두에게, 하다못해 카즈키나 아니면 제게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분노와 원망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결국 기차가 종착역을 알릴 쯔음에는, 코우지의 마음속엔 무력감만이 남았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히로, 그러나 그 위치를 찾기는 커녕 흔적조차 따라가지 못해 어디로 가야하는지조차 모르는 자신.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존재가 부러운 때가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 코우지는 그 어느때보다 더 그 초월적 존재의 힘을 갖고 싶었다. 그러면 네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심지어 네가 왜 떠나야했던 것인지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을텐데.
코우지는 기차가 정지한 이후에야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곳에 와 봐도, 네가 있을 리 없을 텐데. 자기자신이 이렇게나 어리석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어떠한 단서도 없는 이 시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옛 기억을 더듬으며, 추억의 장소를 떠올리는 것 뿐이었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었다. 아니, 없을 것이었다. 저와 숨바꼭질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서야, 떠올릴 만한 곳으로 향했을 리가 없으니. 히로는 그만큼 즉흥적이고, 기분파이지도 않았고, 무책임하지도 않다.
바다의 파도가 부서지고, 다시 그 잔해는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며 다른 소리를 만들어낸다. 히로가 자신은 용기를 주는 프리즘 스타가 되겠다 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왜 이곳을 먼저 찾았을까. 그 물음에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도 팬을 소중히 하던 히로였기에 이 장소가 가장 먼저 않았나 생각했다. 싸늘한 겨울이건만 아직 해변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코우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 곳에는, 많은 아이들이 보호자도 없이 저들끼리 즐거워하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앗!"
모래에 발을 잘못 디딘 듯 한 아이가 그대로 모래위로 쓰러졌다. 그때 태양이 그 머리카락을 비추었고, 코우지의 눈에 들어왔다. 그 색이 누구의 색인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제가 이제껏 그리고 또 그렸던, 지금 찾아헤매는 중인 색이었으니.
코우지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달려갔다. 넘어진 아이를 향해. 아직 제 스스로 일으키지 못한 몸을 손으로 잡아 제 앞으로 일으켜 세웠다.
"히...로..."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져, 소리를 내었다. 눈 앞에 선 아이는 방금 전 옛 기억을 떠올렸을 떄와 완전히 같은 모양새였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제 추억 속의 히로는 반듯한 옷을 입고있었지만, 지금 제 눈 앞에 서 있는 아이는 이미 수 년을 입은 듯 가슴 부근에 프린트가 반쯤은 없어진 옷이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제 이름을 아세요?"
아이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저를 일으켜준 한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와 동시에 자그마한 머리를 또르르 굴려보았지만, 그 어느 기억에서도 제 눈 앞의 남자는 본 적이 없었다.
"하야미... 히로?"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물 방울이 고이고, 결국 흘러내렸다. 코우지는 제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 정말 미친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고, 눈 앞에 펼쳐진 거짓을 뒤집어 씌운 세계는 너무나도 달콤했다.
"성은 몰라요. 그저 엄마가 저를 히로라고 불렀던 것만을 기억해요. 혹시 저를 아세요?"
아이의 말은 잠시 작아졌다가, 기대를 하는 듯 다시 커졌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제 친구, 아니 그 이상이었던 이가 너와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걸? 기억 못 하는 구나?"
코우지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프리즘 스타로서 활동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해진 것에 조금 감사했다. 새빨간 거짓말을 들은 히로는 두 눈을 빛냈다. 어디서요? 언제요? 코우지는 또다시 거짓말을 했고, 작은 히로는 그 대답을 너무나도 쉽게 믿었다.
"그래서 지금 네가 머무는 곳은 어디니?"
낡은 옷과, 마른 몸. 꾀쬐쬐하게 제대로 씻지 못한 모습을 보면 분명 보육시설에 맡겨져 있는 듯 했다. 오버 더 레인보우가 결성되고서 꽤 시간이 지난 이후, 같이 술을 마셨을 때 히로가 제 어린 시절에 대해 털어놓은 것을 아직 코우지는 잊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어린 몸으로 다시 그러한 일을 겪게 하다니, 코우지는 세상이 너무나도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작은 걸음에 발맞추어 가며 향한 곳은 예상대로 보육 시설이었다. 코우지는 작은 히로가 듣지 못하게끔 한숨을 쉬었다. 이 작은 아이가, 제가 알고 있던 히로이던지, 혹은 아니었다 하여도 안타까웠다. 뒤늦게 히로가 온 것을 본 원아들은 모두 달려나오며 늦게 와서 걱정했다며 히로를 타박했다. 코우지는 잠시 잡았던 작은 손을 놓고서, 원장 선생님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아이들과 놀고 있으라고 하였다. 히로는 그런 코우지를 위로 올려보며, 불안한 얼굴을 지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 그 불안감을 코우지는 읽을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더 외로움을 잘 타던 히로였지만 내색을 하지 않는 통에, 결국 히로의 너무나도 그 작은 표정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있다가, 다시 돌아올게. 이제 계속 볼 수 있을 거야."
작은 히로의 키에 맞추어 살짝 허리를 숙인 코우지는 그 연한 빛을 띄는 보드라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말과, 저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안심이 된 것인지 작은 히로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제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총총 작은 걸음으로 달려갔다.
"히로를 데려가고 싶으시다고요?"
원장은 다시 날카롭게 말을 되물었다. 아직 20대 초에 불과한 남자가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 하는 것이 마땅치 않은 게 분명했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나오고, 만약 대학에 진학했다면, 제 나이는 지금 대학을 다니며 소득은 커녕 부모에게서 독립조차 못하였을 나이였기에 코우지는 그 말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아이들을 최소한의 선 이상은 신경쓰며 돌보는 원장이라는 표현이었으니.
"히로, 저 분이 너를 데려가고 싶다 하셨구나. 넌 저 분과 함께 가고 싶니?"
마지막으로, 아동의 의사를 물어보는 과정이었다. 코우지는 그 전의 어떤 절차보다도 이 때 더 긴장하였다. 이제껏 여러 번 보육원을 찾으며 작은 히로가 저를 따르는 것을 보았지만, 친구들 때문에 떠나고 싶지 않다. 라고 말 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네...! 가고.. 싶어요...!"
조금 우물쭈물 한 목소리었지만 그 끝에 들어간 힘이, 작은 히로의 명확한 의사를 밝혀주고 있었다. 코우지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히로는 저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 점이 너무나도, 기뻤다.
다시 도쿄로 돌아가는 길에는, 두 사람이 기차에 앉아있었다.
WRITTEN BY
- serel
@saiker0_0